
“ 작은 전차가 왜 ‘땡땡이’인 줄 알아? 종을 땡 치면 멈추고 땡땡 치면 다시 출발이야. 이 근처에 한전 서부영업소가 있는데 거기가 바로 전차의 차고였어. 은방울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이 바로 그 마포종점이야. 전차가 폐선 된 게 69년도였는데 내가 그때까지 계속 운전을 했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나.”
이는 전차기사 전새채 씨의 증언으로 김수민(19세) 학생이 만나서 채록한 이야기다. 김수민 학생은 그 유명한 마포종점이 바로 염리동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전씨를 찾았고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함께 찾아냈다.
염리동은 마포종점을 비롯 염리(鹽里)라는 지역명이 유래한 옛 소금창고와 소금전터, 1960∼70년대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달동네 골목길 등 훌륭한 문화자산이 풍부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도심재개발로 옛 모습이 급격히 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십대 청소년들이 도심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달동네 구석구석에 숨겨진 옛 이야기를 찾아내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김수민(19세), 조은누리(18세), 이석주(18세), 김은혜(19세), 김우영(18세), 송태호(18세), 김채영(18세), 박현걸(18세) 등 8명이 쓴 염리동 마을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염리동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들의 인터뷰와 발품을 팔아 찾아낸 동네 구전, 떠도는 갑남을녀의 생활사, 골목길 풍경 등은 서울 달동네의 살아있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비록 십대 청소년들의 작품이지만 소재의 발굴이나, 이야기의 전개, 문장의 깔끔함 등을 따져볼 때 전문가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문화기획가 임재춘씨의 말이다.
이 책 발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김수민 학생은 “염리동의 수많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면서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염리동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웃과 마을에 대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이정표와 같은 곳”라고 말했다.
이 책자는 1장에서 ‘마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십대들의 고찰을 실었고, 2장에서는 개바우 전설, 일제시대 일본인 목장인들의 마루보시 사택, 아소정터, 공중변소, 80년대 인기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등 염리동의 과거와 오래된 동네모습들을 산책해 보듯 엮었다. 3장에선 마포종점을 추억하는 전차기사, 우리시대 마지막 소금가게 할아버지, 쌀가게, 고물상 주인 등 염리동 터줏대감의 인생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지막은 염리동의 많은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으로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년 1월, 염리창조마을 조성사업을 시작한 장종환 전 염리동장의 인터뷰가 장식했다. 그는 “개발에만 의미를 두고 옛것에 생각하지 않는 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통, 나눔, 이러한 정신을 이어가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마포에 연고가 없는 십대들이 염리동 달동네를 찾게 된 건 염리동 주민센터와 서울시대안교육센터가 지난해 여름, 마을 만들기란 주제로 의기투합하면서부터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센터장 조한혜정)는 작년부터 제도권 학교 밖 청소년들이 모여 공동체, 이웃 등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에 필요한 해법을 모색해 보는 ‘지구마을 젊은 주민들’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은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습과정의 일환으로, 센터에 연계된 19개 대안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모집한 결과, 공간 민들레, 스스로넷 미디어스쿨 소속의 청소년 8명이 프로젝트팀으로 선발됐다.
한편 염리동주민센터(동장 구본수)는 염리동주민자치위원회와 함께 지난 해부터 뉴타운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마을의 일상사를 기록,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염리창조마을 프로젝트를 벌여왔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강원재 부센터장은 “동네, 마을과 같이 점차 잊혀져 가는 물리적인 문화나 정신적 자산의 회복을 주제로 동네를 물색하던 차에 재개발을 앞두고 주민들과 함께 마을성 회복운동을 추진해 온 마포구 염리동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아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기획안 작성, 자료조사 및 동네 탐방, 인터뷰, 사진촬영, 기사 작성 등을 스스로 해냈다. 성미산학교 교사인 정희영씨와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임재춘씨, 강원재씨 등이 멘토로 참여했다.
한편 염리동주민자치위원회는 3월 12일(목) 오후 3시, 염리동주민센터에서 김수민 학생 등 책을 만든 마을이야기 프로젝트팀, 인터뷰 대상자, 마을 주민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책자는 비매품으로 총 500부가 발간됐으며 올 4-5월경에는 비영리단체인 ‘희망청’과 함께 일부 내용을 보완해 일반 도서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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