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지난달 1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지 37일만이다.
박창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료원장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8일 오후 2시30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후 1시43분경 서거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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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또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심장이 멎으셨다"며 "고령이신데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심폐소생술은 커다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고인을 편안히 보내드렸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을 역임하셨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 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며 "그동안 쾌유를 기원해주신 국민 여러분들과 세계의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며, 의료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입원 후 수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겨왔다. 특히 이달 10일 새벽에는 매우 위독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가 극적으로 회복돼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지난주말부터 병세가 다시 악화돼 18일 오후 1시43분경 결국 서거했다.
유족과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임시 빈소를 마련 했다.
이와 관련, 박지원 의원은 "지금 마련되는 빈소는 임시 빈소"라며 "유족들을 비롯해 청와대 측과도 상의해 빈소와 장례절차 등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오후 7시에 조문할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을 `인동초`에 비유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정치역정속에서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해방전 목표상선회사를 거쳐 목포일보를 경영하기도 했다. 1954년 민의원 선거를 통해 이듬해 정치역정을 시작했다. 세번의 실패끝에 1961년 인제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1970년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경쟁끝에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돼 이듬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결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총선 지원유세중 테러를 당했고, 유신체제하에서 일본으로 망명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1973년 납치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극적으로 살아났다.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1980년 한동안 해빙기를 맞았으나 신군부에 의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진압되고, 김 전 대통령도 내란혐의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몇차례 죽을고비를 넘겼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 및 김영삼 전 대통령과 두차례 대선에서 실패한 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 시절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워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내는 등 한반도평화에 기여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으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전도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2009년 8월18일 국민들의 애도속에 영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