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지 글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수능이 있던 날 이후 더욱 그렇습니다. 어제는 아들하고 생맥주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다행히 이 녀석이 매우 실용적이고 내게 편안한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무역관련 사업을 하고 싶어하길래 네덜란드어나 유럽통상을 전공으로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방면이라면 도움을 받을 후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시당 창준위원장 선거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나더러 한몫을 하라고 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 기여도가 있는 젊은 친구를 추천했습니다. 지금 참여하는 정당활동은 시민운동보다 한차원 높은 사회기여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 나라 이 사회의 덕을 보아온 자로서 조금이라도 사회환원을 하면서 뜻이 맞는 사람들 속에 어울림으로써 은퇴후 보람있는 삶을 꾸리는 데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 무엇보다도 내 의식의 상승 진화 내지 진보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매일 호오포노포노의 네가지 기원-사죄, 용서, 감사, 사랑-을 계속하면서 시편 130장을 외우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기다린다는 것은, 에고의 근원인 몸과 마음을 의지처로 삼는 대신 법신불을 의지처로 삼는 전의(轉依)가 이뤄지도록 비는 것입니다.
시편 130장은 특히 죽은 자들의 기도로 일컬어집니다. 진정 죽은 자로서 살기를 바라지만 최후까지 경계해야 할 것은 영적 에고라 합니다. 어쨌든 동물적 생존과 그 생존논리의 집합인 사회적 이념과 질서 속에서 다른 모든 중생을 용서하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나를 용서하는 지름길이라는 게 어렴풋이 이해되는 요즈음입니다. <용천 미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