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자기증식1>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의 주식을 사라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나바로의 저서에 등장하는 사례다. 피터 나바로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가격의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키워야 돈을 벌수 있다는 거시적 파동이론을 주창한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의 주식을 사라는 말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다음 날 미국 뉴욕시장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와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거시적 파동이란 베이징의 나비를 뉴욕의 폭풍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논리적 고리와 안목을 제공하는 도구인 셈이다. 거시적 파동이론은 예상치 못한 외부의 변수들에 주목하여 잠재된 리스크를 읽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모든 변수는 리스크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나비의 날개짓은 예고된 리스크이기도 하지만 잠재된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기회를 간과해내는 안목이 아닐까?
<셀프서비스의 마케팅2>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대형할인점을 갈 때 낮은 가격을 생각한다. 하지만 할인점의 낮은 가격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이 바로 셀프서비스다. 집까지 물건을 배달하는 것도 셀프서비스고, 보관하고 저장하는 것도 상품에 대한 문답도 셀프서비스다. 즉 우리는 모두 대형할인점에 일을 해주고 급료를 받는 대신 물건을 싸게 사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소비자 관여도3>
다수의 소비자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라해서 소비자가 자주 사용하는 제품이라고 해서 소비자가 그 제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마케팅업계에서는 이런 격언이 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소비자다” 이 말은 한번 히트친 상품이라고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자만은 금물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랑과 믿음이 무조건 돈독한 것은 아니다. 혹시 상대방은 딱히 같이 밥 먹고 영화 볼 사람이 없어서 그저 습관적으로 날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여도가 낮은 사랑을 할 때는 점유율이 높다고 무조건 자만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비효율이 효율을 이기는 방법, 네트워크 외부성4>
특정상품에 대해 일단 형성된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소비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네트워크현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주창한 이후로 특히 마케팅 영역에서 기업들이 구전(입소문)을 넘어 인터넷시대에 주목하는 경향이 역시 네트워크에 입각한 마케팅기법이라 할 수 있다. 밴드웨건 효과는 1848년 미국 대선 때 출마한 자카리 테일러의 선거운동을 위해 당시 유명한 광대였던 댄 라이스가 악대를 동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 데서 유래한 용어다. 일단의 사람들이 요란한 악대를 따라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무슨 대열이니 모르고 그저 따라가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악대차 효과” 또는 “편승효과” 라고도 한다. 스놉효과는 밴드웨건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선택을 할 경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선택의 수요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속물효과”라고도 한다. 우리가 컴퓨터를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주의 하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주로 어느 계열의 컴퓨터를 쓰는지 여부다. 같은 것을 사야 호환도 편하고, 모르는 것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보기도 편하니까. 다른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고 안심되니까.
<모두가 득이 되는 Give & Take 신뢰게임5>
내 정책이 효과가 없다면 국민여러분이 새로운 대통령을 뽑으십시오! 위정자가 공적 자금(세금)을 필요로 하는 모종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과의 신뢰 게임에 기반해 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프로그램들에 대해 뉴스위크의 조너선 엘터 기자는 신뢰 게임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노동자와 고용주와의 관계에서도 신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때 신뢰는 생산성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밸경제학상 수상자인 애컬로프가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에서 “선물교환”이라는 개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후한 임금을 주고, 후한 대우를 받은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답하는 방식도 가능하리라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신뢰”가 존재하였단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곤장을 맞다. 형벌론6>
비교적 조용히 유지되어오던 싱가포르의 태형은 1994년 한 미국소년 때문에 전세계의 주목을 끌게 된다. 치안당국의 자동차를 훼손하는 범죄의 빈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미국 국적 15세 소년 마이클은 50대 이상의 차에 손상을 가한 혐의로 기소 1994년 징역4월 3,500싱가포르달러의 벌금과 함께 6대의 태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죄수는 금속재 또는 목재로 만들어진 형틀에 묶이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의 엉덩이에 매를 맞게 된다. 건강한 청년도 한 대 맞으면 기절할 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가혹한 형벌로 알려져 있다. 원칙적으로 형벌이란 범죄자에게 두려움을 주기보다는 교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대다수 문명국에서 잔인하고 비안간적인 처벌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형벌론은 크게 응보주의와 예방주의로 갈래를 나누는데 범법자의 교화에 중점을 두는 특별예방주의와 달리 응보주의와 일반예방주의는 범법자의 처벌에 중점을 두는 입장이다. 터키에서는 음주운전자 적발시 차에서 내리게 한 후 도심에서 30Km 떨어진 외곽에 내려놓고 구보로 귀가하도록 한다. 말레시아에선 음주운전자 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배우자까지 감옥에 가야하고, 엘살바도르에서는 음주운전자는 적발 즉시 총살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형벌의 역할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포르노황제의 불온한 자유, 언론의 자유7>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중의 하나다. 언론기관의 책임을 다룬 판례도 많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판례 중 하나가 포르노잡지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도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폴웰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가 이끄는 교회는 미국내에서 두 번째 신도수를 자랑했고, 거둬들인 헌금은 민주당이나 공화당보다 앞섰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폴웰 목사는 포르노를 만드는 사람들은 ‘정신을 오염시키는 자들“로 지칭했는데 그 중에서도 <허슬러>를 만드는 래리 플린트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에 격분한 래리 플랜트는 폴웰 목사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보통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의 기사를 쓰기에 이른다. 래리 플린트가 만든 기사는 미국의 “캄파리”라는 술 브랜드 광고를 패러디하여 제리 폴웰 목사가 자신의 첫 경험을 털어놓은 형식의 가짜 인터뷰 기사를 써서 <허슬러>에 실었다. 이 기사에는 폴웰 목사가 악취나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어머닐 근친상간했고, 설교를 할 때는 꼭 술을 마신다고 고백한 것처럼 연출되어 있었다. 폴웰 목사는 사생활 침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고의적인 정신적 가해행위 등 명목을 내세워 거액소송 제기하였다. 그의 지지자들은 소송비용을 모금했고, 1심과 2심 재판에서 결국 폴웰 목사는 승소한다. 이 사건이 연방대법원에 상고되자 법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내용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언론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찬성할 수 없지만, 막상 소송에 관여하거나 지지선언을 하기에는 기사의 내용이 너무나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섣불리 래리 플린트의 편을 들었다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켜만보기엔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내포된 사건이기도 했다. 각각 당대 최고수준의 변호사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변론으로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9명의 대법관 앞에서 한치의 물러섬 없는 설전이 벌어지고 두 달이 지난 후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플린트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패러디물을 단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금지시킨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 된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래리 플린트가 만든 기사는 분명히 천박하고 질이 낮은 것이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중에는 기분이 상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의 질이나 수준에 따라 언론의 자유를 선별적으로 적요하게 되면 자칫 통념에 맞는 의견만 허용되는 위험한 사회로 가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명백히 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래리 플린트 사건이 언론자유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결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이다.
<LA 폭동과 법정의 양심 두순자 사건8>
1992년 일어났던 “LA 한인폭동”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폭행에 분노한 LA지역의 흑인들은 왜 하필 한인교포들의 가게만 집중적으로 공격했을까? LA폭동이 한인교포사회에 대한 테러까지 번지게 된 배경에는 “두순자 사건”이 있었다. LA폭동이 벌어지기 1년 전인 1991년 3월 16일 가게를 보고 있던 두순자는 흑인 소녀가 쥬스 한 병을 책가방에 집어 넣는 광경을 보고 도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흑인 소녀의 책가방을 움켜쥐자 제법 덩치가 컸던 그 소녀는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때였다. 놀란 두순자는 바닥에 넘어져 잠깐 정신을 놓쳤다가 이내 카운터 뒤에 숨겨놨던 권총을 집어 들고 소녀를 향해 발포한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고, 두순자는 살인죄로 기소된다. 재판에서 두순자는 흑인 소녀를 쏜 것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무죄를 선고하자니 미국 전체의 흑인사회가 흑인 소녀의 목숨 따윈 주요하지 않다는거냐! 운운하며 거세게 반발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판사는 끝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범죄혐의만 놓고 판결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한 판결을 내릴 것인가? 판사는 결국 법조인으로서 소신을 택한다. 두순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두순자가 풀려나자 아니나다를까 미국의 흑인사회는 격분했다. 그리고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두순자 사건에 대한 기억은 한인사회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로 표출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판사의 결정은 잘못된 것일까? 만약 법정이 해당 범죄혐의사실을 밝혀내고 판단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한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정의 양심을 깬 판례로 지금껏 회자되었을 것이다. 우리 법정에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얼마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법정은 과연 어떠한 판결을 내렸는지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구가 된 사연, 유전자 감식9>
얼마전 한나라당 경선후보 청문회자리에서 여성후보였던 P씨는 내게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DNA검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펄쩍 뛴 일이 있었다. P씨가 언급했던 DNA검사는 유전자감식 기법이다.
1984년 미국에 사는 22살 여대생 재니퍼는 어느 날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 범인은 제니퍼의 목네 대고 성폭행을 했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사진을 제니퍼에게 보여주며 누가 범인이냐고 물었다. 제니퍼는 그 중에서 코튼이라는 사람을 망설임없이 지목한다. 하지만 남자는 펄쩍 뛰며 범행을 부인했다. 법정에 출석한 제니퍼는 이렇게 증언한다. “이 사람이 저를 강간한 범인이 분명합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어요” 확신합니다. 결국 강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2년 후 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옥에 갇혀 있던 코튼이 진범을 찾아낸 것이다. 같은 교도소에 있던 어떤 복역수가 사실은 내가 제니퍼를 강간한 진범이라고 동료에게 털어놓는 걸 듣게 된 것이다. 코튼은 진범을 찾았다며 즉시 재심을 청구하지만 하지만 코튼이 지목한 죄수를 본 제니퍼는 고개를 흔든다. 저 사람은 처음보는 얼굴이예요, 코튼이 범인 이 맞다니까요. 코튼은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만다. 코튼이 감오에 갇혀 지낸 지 11년이 지난 어느 날, 무심코 TV에서 OJ심슨 재판과 관련된 뉴스를 보던 코튼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줄 기적같은 방법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유전자감식이다. 코튼의 요구로 코튼의 DNA와 범행현장에서 발견되었던 정액을 비교감식결과 코튼은 무죄로 판명되었다. 진범은 교도소에서 법행을 털어놓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코튼이 틀림없는 범인이라고 두 번씩이나 증언했던 제니퍼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왼벽한 착각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11년이나 옥살이를 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목격자나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정황을 착각하거나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법정도 수사당국도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판단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끼어들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레들이 아닐 수 없다. 11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코튼은 제니퍼를 용서하고, 이후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첨단의 과학수사기법 덕분에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으니 그저 모든게 은혜로울 뿐이라고 했단다.
마포구 신수동 김 신 열